충격적인
성경적 진리
WLC는
세상에 진리를 전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수했거나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이 발견될 때,
우리의 잘못을 빨리 인정하고,
그것을 바로 잡고자 힘껏 노력합니다.
과거에 WLC는
성경에 기록된 영원히 타는 불에 대해 충분히 강조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강조하기
원합니다 .
. . 왜냐하면 그것은 가장 아름답고,
희망을 불러 일으키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진리들은 광대하고,
심오하며 조화롭다.
그런데 때때로,
어떤 문장들은 다른 문장들과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왜냐하면 올바르지 않은 이해나
충분하지 않은 지식 때문에 그렇다.
만연한 혼돈 중의 하나가 악한
자가 받는 보응에 관한
것이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다.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전도서 9:5,
6) 그러나,
성경은 또한 영원히 타는 불이
결코 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렇게 상충되는 것처럼 보이는
관점들을 조화롭게 만드는 진리는 아름답고 믿음을
견고하게 해준다.
이사야서에는 이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열쇠가 있다.
거기에는 질문이 나온다:
”시온의
죄인들이 무서워하며 두려움이 위선자들을 놀라게
하므로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 가운데 누가 그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리요?
우리 가운데 누가 영영히
불타는 것과 함께 거하리요?
하는도다.”
(이사야 33:14,
킹제임스버전)
상식적으로,
불 속에서 누가 살 수 있느냐는
것은 수사적 질문이 아닌가?
그러나,
바로 그 다음 구절에 그 답이
나온다:
의롭게 걷는 자,
올바르게 말하는 자,
학대하여 얻은 이득을 멸시하는
자,
손을 저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바위로 된 요새가 그를 보호하는 처소가 되며 그는 빵
공급을 받고 물을 확보하리라.
네 눈은 아름다움
가운데 있는 왕을 보며 그들은 매우 멀리 있는 땅을
바라보고 (이사야
33:15-17)
영원한 화염 속에서 |
영원한 화염 속에서
살며 기뻐할 자들은 의인들이다.
오직 거룩한 사람들만이 야후와와
함께 살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야후와는 소멸시키는
불이시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12:29)
야후와는 모든 생명의
원천이시다.
“이는 우리가 그분
안에서 살며 움직이며 존재하기 때문이라.”
(행 17:28)
순결한 에너지가 그분으로부터,
중단되지 않는 물결로,
흘러 나온다.
성경에,
빛과 생명과 에너지의 이 거룩한
근원의 나타남이 ”불”로 묘사된다.
루시퍼는 타락하기
전에 덮는 그룹이었다.
창조주로부터 흘러 나오는 빛과
에너지의 끊임없는 광선들이 해가 없는 날의,
계속되는 빛으로 그를 둘렀다.
덮는 그룹으로서,
루시퍼는 전능하신 분의 즉각적인
임재라는 영원한 불 속에 거했었다.
그는 그 화염 속에서 상함을 입지
않고 왕래할 수 있었다.
너는 기름 부음 받은
덮는 그룹이라.
내가 너를 그렇게 세우매 네가
야후와의 거룩한 산 위에 있었고 불타는 돌들 한가운데서
오르내리며 다녔도다.
네가 창조된 날부터
네가 네 길들에서 완전하였는데 마침내 네 안에서
불법이 발견되었도다.
(에스겔 28:
14, 15)
계시를 통해,
선지자 다니엘은 하늘의 보좌를
조금 볼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그
곳에서 야후와로부터 흘러 나오는 영광의
불이 강처럼 보였다:
그 왕좌들이 무너져
내릴 때까지 내가 보매 옛적부터 계신 이가 앉아 계시는데
그분의 옷은 눈같이 희고 그분의 머리털은 순결한 양털
같으며 그분의 왕좌는 맹렬한 불꽃 같고 그분의 바퀴들은
타오르는 불 같더라.
불 같은 시내가 그분
앞에서 흘러나오고 천천이 그분을 섬기며 만만이 그분
앞에 서 있더라.
심판이 준비되고 책들이 펴져
있더라.
(다니엘 7:
9, 10)
이와 같이,
야후슈아께서 변화된 모습으로
사람에게 나타났을 때,
그분은 종종 불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모세는 자기 장인
곧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지키더라.
그가 그 떼를 사막의 뒤편으로
인도하여 야후와의 산 곧
호렙에 이르매 야후와의
천사가 떨기나무의 한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속에서
그에게 나타나니라.
그가 보니,
보라,
그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떨기나무가 소멸되지 아니하였으므로
(출애굽기
3:1, 2)
그 후에,
야후와께서 그분의 율법을 선포하시기
위해 시내산에 내려오셨을 때,
그 산 전체가 불 속에 있던 것처럼,
바라 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분께서는 찬란한 불꽃 가운데 계신
것처럼 보였다:
“시내 산이 온통
연기로 자욱하니,
이는 야후와께서 불 가운데서 그
위로 내려오셨기 때문이더라.
그곳의 연기가 화로의 연기같이
위로 올라가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더라.”
(출애굽기 19:18)
야후와 그분 자체가
소멸시키는 불이시기 때문에,
그분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자는,
영원히 불타는 것에 더 가까이
나가는 것이다.
시내산에서 신성의 임재 가운데
40일을
보낸 모세의 얼굴은 그가
보았던 놀라운 영광을 반사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내려왔는데,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
. . 모세는 자기가
그분과 말하는 동안에 자기 얼굴이 빛나던 것을 알지
못하였더라.
아론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모세를 보니,
보라,
그의 얼굴이 빛나므로 그들이
그에게 가까이하기를 두려워하였더라.
모세가 그들에게 말할
때 . . . 그가
베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그러나 모세가 야후와
앞에 들어가 그분과 말할 때에는 밖으로 나올 때까지
베일을 벗었다가 나와서는 그분께서 명령하신 것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렀으며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을 보고 모세의 얼굴의 피부가
빛나는 것을 보았으므로 모세가 그분과 말씀을 나누러
들어갈 때까지 다시 베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출애굽기
34:29-31,
33-35)
야후와의 임재가 바로
영원한 불이다.
그 불 안에서는 오직 의롭고 거룩한
것만 살아남을 수 있다.
야후와의 임재 안에서는 죄가
존재하는 곳마다,
거룩한 야후와의,
영원히 타는 불이 그것을 태워
버린다.
성화되지 않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 거룩함이라는 영원한 불의 임재를 두려워한다.
야후와께서 시내산에서 말씀하셨을
때,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온 백성이 천둥과
번개와 나팔 소리와 연기 나는 산을 보았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볼 때에 이동하여 멀리
서서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야후와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출 20:18,
19)
야후와의 불이 태우는
오직 한 가지는 죄,
그리고 그 죄를 계속 고집하는
죄인들이다.
이것이 나답과 아비후의 경험에서
묘사되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각 자기의 향로를 가져다가 그 안에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놓되 야후와께서 그들에게
드리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이상한 불을 그분 앞에
드렸더니 불이 야후와께로부터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야후와 앞에서 죽으니라.”
(레위기 10:
1, 2)
나답과 아비후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존귀를 받았다.
그들은 그들의 아버지와 그 가문과
함께,
제사장들로서 야후와를 직접 섬기기
위해 선택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받은 존귀에
합당한 존경,
사랑,
경외심으로 자신들을 가꾸지
않았다.
야후와의 거룩한 율법을 극악하게
범한 것 때문에,
이 제사장들이 야후와께로부터
나온 불에 의해 죽었다.
그러나 성경에는,
영원히 불 타는 그 불에 관한 중요한
것을 밝혀주는 흥미로운 내용이 담겨 있다.
“모세가 아론의
삼촌인 웃시엘의 아들 미사엘과 엘사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가까이 나아와 너희 형제들을 성소
앞에서 진영 밖으로 나르라,
하니 이에 그들이 가까이 나아와
모세가 말한 대로 그들을 옷 입힌 채로 진영 밖으로
나르매” (레위기
10:4, 5)
얼마나 흥미로운가!
야후와께로부터 나온 ”불”에
의해 두 남자가 ”삼킨 바” 되었는데
그들의 옷은 손상되지 않았다!
만약 죽을 만큼 충분히 오랜 동안
화염 속에 던져져 있었다면,
어떻게 그들이 입고 있던 옷들이
멀쩡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옷들은,
수분이 많이 포함된 그들의 몸보다
더 빨리 타 버렸어야 했을 것이다!
종종 간과되어 온 이
세부 내용이 야후와의 임재라는 영원히 타는 불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
야후와의 불은 화학적
연소의
불이 아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느부가넷살 왕이 세운
우상에 절하고 경배하기를 거절한 것에 대해 화형에
의한 죽음의 선고를 받았을 때,
그들은 옷을 입은 채로 용광로
속에 던져졌다:
“이에 이 사람들이
결박 당하여 .
. . 맹렬히 불타는 용광로 한가운데로
던져졌더라 .
. . 이 세 사람 곧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 당한
채 맹렬히 불타는 용광로
한가운데로 떨어졌더라.”
(다니엘 3:
21, 23)
불에 탄 것이 있었다:
그들을 결박했던 줄들은 타 버렸다.
그러나 그들은 상함을 입지 않았다.
그들의 옷도 손상을 입지 않았다!
이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한가운데서 나오매
통치자들과 총독들과 대장들과 왕의
조언자들이 함께 모여 이 사람들을 보니 불이 그들의
몸에 힘을 쓰지 못하였고 그들의 머리털 하나도 그을리지
못하였으며 그들의 겉옷도 변하게 하지 못하였고 불
냄새도 그들에게서 나지 않는다.
(다니엘 3:
26, 27)
이 용감한 하늘의
영웅들이 어떻게 구원 받았는지에 대한 비밀은
간단하다:
그들은 야후와의 아들의 임재 안에
서 있었던 것이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이 세 사람은 맹렬히
불타는 용광로 한가운데로 묶인 채 떨어졌다.
그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깜짝 놀라 급히
일어나 자기의 조언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세 사람을
결박하여 불 한가운데로 던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오 왕이여,
옳소이다.”
하매
그가 응답하여 이르되,
“보라!
내가 보니 결박이 풀린 네 사람이
불 한가운데서 걷고 있는데 그들이
아무 해도 입지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형체는 하나님의
아들과 같도다,
하더라.”
(다니엘 3:23-25)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고,
신성의 율법에 맞추어 사는 모든
자는, 그분의
전능한 임재의 소멸시키는 불 속에서 설 수 있고,
영화롭게 될 수 있다.
훌륭한 이 세 명의 히브리인들이
야후와의 율법에 순종함으로써,
그들은 영원하고 거룩한 그 불
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었고 이 세상의 어떤 불도 그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없었다
야후와의 임재라는 |
야후와의 임재라는
영원한 불은 모든 죄와 이기심을 태워 버린다.
죄는 1)
거짓말과 종종 2)
강압 (사탄의
특성)으로
구성된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다.
그러나 소멸시키는 불 안에 거하시는
분으로부터 나오는 영원한 진리는 거짓을 파멸한다.
강압은 신성의 사랑에 의해 정복된다.
거룩한 영은 진리이며 사랑이다.
오순절에,
성령이 모여 있던 신자들 위에
임했다.
“불의 혀같이
갈라진 것들이 그들에게 나타나 그들 각 사람 위에
앉더라.
그들이 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하게 하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더라.”
(사도행전 2:
3, 4) 이 초기 신자들은 신성의 불에
의해 타지 않았다.
그 때 이후로,
그들은 사랑으로 연합했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전 세계에 전했다.
영원히 불타는 지옥이라는
교리는 창조 시에 아담과 이브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졌다는
잘못된 전제에 기초했다.
그러므로,
그들이 죄를 범하고 형벌을 받아야
했을 때,
야후와께서 그들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지닌 채 지옥불에서 고통 받을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는 논리가 된다.
이 신념은 성경을 기초로 한 것이
아니다.
디모데전서 6:
16은 명백하게 말한다:
“오직 야후와께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그분은 아무도 접근하지 못할 빛에
거하시며 아무도 그분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도
없나니”
“야후와는 사랑이시라.”
(요일 4:8)
그분께서는 또한 공의를 즐거워하신다.
그러므로 야후와께서
말씀하신다.
“지혜로운 자는
자기 지혜를 자랑하지 말고 용사는 자기 힘을 자랑하지
말며 부자는 자기 재물을 자랑하지 말라;
오직 자랑하는 자는
이것 즉 자기가 깨달아 나를 아는 것과 또 내가 땅에서
인자함과 판단의 공의와 의를 집행하는 야후와라는
것을 자랑할지니라.
나는 이 일들을 기뻐하느니라.”
(예레미야 9:23,
24)
사랑과 공의의 엘로아로써,
야후와께서는,
여전히 유예 기간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그 유예 기간 동안에,
그들은 야후와를 섬길지 또는 그의
반역으로 사탄을 섬길지 선택할 수 있었다.
야후와께서는 가장 악한 죄인조차도
영원히 고통 받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그것은 사랑도 공의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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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은 선물이다. |
영원한 생명은 선물이다.
그것은 오직 야후슈아의 공로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승리한 자들에게만 주어진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야후와의 은사는 우리 주 그리스도
야후슈아를 통한 영원한 생명이라.”
(로마서 6:23)
죄를 고집하기를
선택하는 자들의 형벌은,
고통 속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형벌은
사망이다.
영원한 생명은 오직 야후와의
신성의 율법에 복종하기를 선택한 자들에게만 주어진다.
성경은 이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밝혀준다:
그러므로 야후와께
복종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에게서 도망하리라.
야후와께 가까이 나아가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너희에게 가까이
오시리라.
너희 죄인들아,
너희 손을 정결하게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너희 마음을 순결하게 하라.
야후와의
눈앞에서 스스로 겸손하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야고보서 4:7-8,
10)
성화의 과정을 통해
영원한 불로 그들의 죄와 찌꺼기를 태워
버리도록 하는 모든 자들은 야후와의
생명을 닮은 생명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약속이다!
“그 도시는 해와
달이 그 안에서 빛을
비출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야후와의
영광이 그 도시를 밝혀 주었고 어린양께서 그 도시의
광체이시기 때문이라.”
(요한계시록 21:23)
구속 받은 자들은 야후와의 임재를
즐거워하며,
영원한 날의,
햇빛이 필요 없는 빛 가운데서
걸을 것이다.
그들은 영원한 불의 한가운데서도
살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의지를
굴복해왔고,
정결케 하는 불로 그들의 죄가 탈
수 있도록 허락해왔기 때문이다.
한 여성 성경 연구
모임에서 말라기서를 읽고 있었다.
그 그룹에서 말라기 3장을
연구할 때,
여성들은 바로 이 주제에 대한
약속을 보고 흥미를 느꼈다:
그가 임하는 날을
누가 견디겠느냐?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서겠느냐?
그는 정련하는 자의 불과 같고
세탁하는 자의 비누와 같으니라.
그가 은을 정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같이 앉아서 금과 은같이 그들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의 안에서 야후와께
헌물을 드리게 하리라.”
(말라기 3:2,
3)
영원한 불로 그들의 |
은이 정련되는 과정을
몰랐던, 그
여인들은 성경에 묘사된 그 과정을 온전히 이해하고자
그 정련 과정을 배우기 원했다.
한 은세공인을 알고 있던 여인이
그 세공인에게 가서 그 과정을 관찰하고 성경 공부
모임으로 돌아와 배운 것을 전달하기로 했다.
그가 일하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
은세공인과 약속을 정한 후,
그녀는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열려 있는 틀 위에 은
한 조각을 놓고,
은세공인은 은을 정련할 때,
모든 불순물들을 태워 버릴 수
있기 위해 불길이 가장 뜨거운 곳인 불 한가운데 은을
넣어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여인은,
은이 그 불길 속에서 정련되는
시간 내내 세공인도 그 불 곁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하는지 물었다.
그 남자는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 은을 쥐고 여기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시간 내내 은을 계속 쳐다보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 은을 너무 오랜 동안 방치해두면,
그 은도 손상되어 버리니까요.”
여인은 침묵 속에서,
잠시 더 지켜보더니,
질문했다:
“그 은이 완전히
정련되었다는 것을 당신은 어떻게 아나요?”
“그건 간단해요.”
그 남자가 미소를 지으며,
그 은 조각을 조심스럽게 회전시켰다.
“나의 모습을 그
은 조각에서 볼 수 있을 때,
그것이 완전히 정련되었다는 것을
알죠.”
야후와께서 그분의
형상이 그분의 자녀들 안에서 완벽하게 반사되기를,
가장 간절하게 기다리신다.
이것이 이루어졌을 때,
그들은 본향으로 데려감을
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분의 은혜로운 초청은 여전히,
경고에 귀를 기울이는 자들에게
열려 있다:
너희는 야후와를 만날
만한 때에 그분을 찾으라.
그분께서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부르라.
사악한 자는 자기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자기 생각을 버리고 야후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그에게 긍휼을
베푸시리라.
우리 주께로 돌아오라.
그분께서 풍성하게 용서하시리라.
(이사야
55:6-7)
정결케 하시는 분의
불에 복종하는 모든 자는 야후와의 임재의 불을 영원히
즐거워할 것이다.
“땅의 티끌 속에서
잠자는 자들 중의 많은 사람이 깨어나 얼마는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고 .
. . 지혜로운 자들은 궁창의 광채같이
빛나고 많은 사람을 의로 돌아서게 하는 자들은 별들과
같이 영원무궁토록 빛나리라.”
(다니엘 12:2,
3)
요지는 이것입니다.
죽지 않을 의인들이 그 영원한 불
속에서 영원히 살고 번창할 것이며,
동시에,
그 동일한 불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을 위한 “지옥”의
삼키는 불이 될 것입니다.
그 죄인들은 그 불 속에서 매우
짧은 시간 동안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야후와의 임재 자체가
영원한,
소멸시키는 불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주는 다음 구절들도 참조하세요:
“야후와께서
말씀하시느니라.
이제 내가 일어나리라.
이제 내가 높여지리라.
이제 내가 나를 높이리라. 너희
[악인들]이
겨를 수태하고 짚을 낳으리라. 너희 호흡은
불같이 되어 너희를 삼키리라. 백성은 불에 타는 석회 같이
되며 베어서 불에 태우는 가시나무같이 되리로다.
멀리 있는 자들아,
너희는 내가 행한 것을 들을지어다.
가까이 있는 자들아,
너희는 내 능력을 인정할지어다.
시온의 죄인들이 무서워하며
두려움이 위선자들을 놀라게 하므로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 가운데 누가 그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리요?우리 가운데 누가 영영히
불타는 것과 함께 거하리요?하는도다.의롭게 걷는 자,올바르게 말하는 자, 학대하여 얻은 이득을 멸시하는
자, 손을
저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바위로
된 요새가 그를 보호하는 처소가 되며 그는 빵 공급을
받고 물을 확보하리라.”
(이사야 33:
10-16)
모세는 야후와 뵙기를
구하였다:
“그 [모세]가
말하길,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당신의 영광을 내게 보여 주소서.”
(출애굽기 33:18)
야후와께서는 모세에게,
야후와를 보고 살 자가 없다고
명백하게 말씀하셨다.
“그분 [야후와]께서
말씀하시되,
네가 나의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이는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출애굽기 33:20)
“나는 야후와라
변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너희 야곱의 아들들이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말라기 3:6)
야후슈아께서는
본래 그분의 아버지와 함께,
동일한,
영화로운,
불의 임재를 공유하셨다.
그러나 그분께서 평범하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이 되시기
위해 그것을 내려 놓으셨다.
그래서 그분은 죄인들을 소멸되지
않게 하시면서,
그들 가운데 거하실 수 있으셨다.
그러나,그분의
재림 때에는 전혀 다른
상황이 될 것이다: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고 말할 그때에 아이 밴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임하는 것 같이 갑작스러운 파멸이
그들에게 임하나니 그들이 피하지 못하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3)
“그 뒤에 저 사악한
자가 드러날 터인데 야후슈아께서
그분의 입의 영으로 그를
소멸시키시고 그분의 오심의
광채로 멸하시리라.”
(데살로니가후서 2:8)
모든 악한 자들과 그
죄의 사람을 [살전
5:3,
살후 2:8]
멸하는 그분의 오심의 “광채”는
야후슈아께서 하늘에 계신 그분의 아버지야후와와
다시 연합되셨을 때,
회복된 그분의 본래의 영화로운
상태로써,
그분의 불타는 듯한 임재이다.
그 연합이 그분의 기도에서 나타난다:
“오 아버지여,
세상이 있기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그 영광으로 이제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5)
야후슈아께 회복된 “영광”은
사울을 눈 멀게 했던 그 광채이다:
“오
왕이여,
정오가 되어 내가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서 나와 및 나와
함께 길가는 자들을 둘러 비추었나이다.”
(사도행전 26:13)
의인들은 그분의 재림
때에 생존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순간적으로
불사의 생명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변화되리라.”
(고린도전서 15:51,
52)
그분의 재림 때에 악한
자들의 멸망은 야후와의 영원한 불의 임재의 맛보기에
불과할 것이다.
그 불이 결국 회심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은 죄인들과 죄의 모든
모습들로 가득 찬 이 땅 전체를 깨끗하게 만들 것이다.
사탄은 하늘에서
야후와를 향한 반역과 쟁투를 시작했다.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것처럼
야후와의 불의 임재가 마지막 파멸을 이룰 것이다.
“우리의 엘로아는
소멸하는 불이시라.”
(히브리서 12:29)
“그분께서 사악한
자들에게 올가미와 불과 유황과 무서운 폭풍을 비같이
내리시리니 이것이 그들의 잔의 몫이 되리로다.”
(시편 11:6)
“연기가 밀려가는
것 같이 그들을 몰아내소서.
밀초가 불 앞에서 녹는 것 같이
사악한 자들은 야후와
앞에서 망하게 하소서.”
(시편 68:2)
“그들이
땅의 넓은 곳으로 올라가 성도들의 진영과 그 사랑
받는 도시를 에워싸매 불이 하늘에서
야후와께로부터 내려와
그들을 삼켰고.”
(계 20:9)
야후슈아와 야후와
두 분께서 이 밝은 불의 임재를 공유하시며,
두 분께서 새 예루살렘에 거하시기
위해 내려오신다.
그곳에서 그분들의 광채는 태양과
달보다 더 빛날 것이다:
“다시는
낮에 해가 네 광체가 되지 아니하고 달이 네게 밝은
광채의 빛을 비추지 아니하리니,
오직 야후와가
네게 영존하는 광체가 되고 네 엘로아가
네 영광이 되리라.”
(이사야 60:19)
“그 도시는
해와 달이 그 안에서
빛을 비출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야후와의
영광이 그 도시를 밝혀 주었고 그
어린양께서 그 도시의 광체이시기
때문이라.”
(계 21:23)
관련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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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투가 끝났다 (발췌
– “지구가
멸망의 불로 감싸졌고,
의인들은 거룩한 성에서 안전하게
거했다.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에게,
둘째 사망은 힘을 미치지 못한다.
악한 자들에게,
야후와께서 소멸하는 불이 되신다.
그분의 백성들에게는,
그분께서 태양과 방패가 되신다.
요한계시록 20:6;
시편 84:11)